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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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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차 을유보 (1825년) 서문
제4차 을유보 (1825년) 서문


세보명     을유보(乙酉譜)  
발행연도  1825(을유) 순조25 년
권수     20권(활 인)
발행지   서울
서문(序文)   박종훈(朴宗薰)

존존(尊尊) 친친(親親)은 춘추의 의리이다. 존(尊)은 무엇이 가장 큰가? 존조(尊祖)가 가장 크다. 친(親)은 무엇이 가장 큰가? 인친(仁親)이 가장 크다. 성인 이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교화를 친친으로부터 하였으니 친친하고 장장하며, 종법이 서고 소목이 순서가 정연한 위에야 능히 예를 돌이키고 처음을 회복 하여 그로 말미암아 난 바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보첩(譜牒)이 있는 것은 나라에 사기(史記)가 있는 것과 같으니 모두 존친의 의리를 밝히는 것이다.

사마천은 고대에서 멀지 않아 능히 오제(五帝)의 계보와 열후의 세가(世家)를 서술하여 사씨의 장정이 되었으며, 진 위에 내려와서는 씨족의 보승이 모두 유사에게 맡겨졌어도 오히려 고인의 유의를 잃지 않았으니 그런즉 보첩의 책됨은 일가의 책이 아니었다. 후세에 내려오면서 사법이 점점 폐지되어 명산에 간직한 것으로 조차도 왕왕 족히 징빙하지 못하게 되니 따라서 보법이 망매한 것을 알만하다.

우리 박씨는 본래 신라시조에서 나와 면면히 천년을 내려오면서 손지(孫支)가 번연(蕃衍)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사기가 소실되어 파계 원류를 상세히 알 수 없다. 근족(近族)의 반남에 판석(版籍)을 둔 이가 고려 호장공으로써 조선(祖先)을 삼으니 이에 비로소 보첩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20여세동안 보첩을 만들기 세차레였으니 구보를 편집한 것은 임오년(1642년)의 일이었고 계해년(1683년)에 또 수보했으며 최후로는 병술년(1766년)에 하여 거금 60여년이 되었다.

대저 우리 일족의 중다함으로써 거의 수십년만에 한번씩 보첩을 만들어도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고 빠진 것을 보충하기가 어려운 염려가 있거늘 하물며 6070년간의 오랜기간에랴! 그 일을 버려둠이 더욱 오래될수록 그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것이 두려워 여러 종인이 모두 의논하여 마침내 병술보를 바탕 으로 보사르 계승하니, 의례의 상략은 한결같이 구보에 따랐으되, 후사의 출생은 수록하고 천화는 시정하였다. 몇해가 지나 책이 완성되니, 부편과 별천까 지 아울러 무릇 약 천권이었다. 이것이 반남박씨 을유보이다.

보첩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마땅히 보첩을 만든 까닭을 찾아야 한다. 부조(父祖)로부터 위로 선조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일신이니 높지 않은가? 내 몸으로부 터 미루어 뻗쳐서 100세에 미치기까지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존조와 인친의 천도의 근본됨이요, 존조는 또 인친의 근본이 되는 까닭이다. 시 (詩)에 이르기를 『네 한 아비를 생각하지 말고 덕을 닦아라!』하였음은 이를 이름이구나! 즐거이 이 보첩을 함께한 이들과 더불어 이를 말하여 서로 힘쓰 고 이를 적어 세보서(世譜序0를 삼는다 하겠다.

순조25년 을유(1825년) 박종훈(朴宗薰)


* 박찬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10-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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