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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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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임오보 (1642년) 서문
제1차 임오보 (1642년)  서문


세보명     임오보(壬午譜)
발행연도  1642(임오)  인조20 년
권수     2권
발행지   영주
서문(序文)   박미(朴瀰)

영남에 처음으로 군장(軍長)이 없더니, 육부의 대인이 신라시조 혁거세를 물색하여 그를 받들어 임금을 삼았다. 처음에는 그가 알을 쪼개고 나왔는데 그 알의 크기가 박과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이 박(瓢:박표)을 박(朴)이라 하였으므로 성을 박씨(朴氏)라 하니 해동의 박씨들은 모두 그의 후예이다.

신라 사직이 망하자, 고려 태조가 여러 박씨들을 열읍에 나누어 흩어져 살게 하여 각각 판적에 올렸는데, 금성(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의 반남현에 사신 분이 우리 선조이다.
우리 나라 습속이 원래 문헌이 적어서 가까이 증빙할 수 있는 이로 별조를 삼아 보첩을 만드니, 보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려 몇 집이 되었다. 그래서 근세에 영남에 사는 종인이 보첩을 만든 것이 자못 완미하였고, 고 목사 대하씨(故 牧使 大夏氏)가 만든 보첩도 상세하긴 하였으나, 이가 (二家)가 서로 출입이 없지 않았다.

나의 종형 영천수(榮川守: 현재 영주의 수령) 호씨( 濠氏)가 개연히 앞장서서 찰방(察訪: 종6품의 관리) 회무(檜茂:1575년 생, 병자호란 의병장)씨 등과 같은 종인들을 창도하여 두 보첩을 합쳐 이정하니 첫머리에는 선제의 비갈과 뇌문 및 휘일(諱日)을 실어서 바로 그물이 벼리에 매어있듯 집대성 하였다.

신미년(인조19년 1641년) 가을에 회무(檜茂)씨가 종형의 명을 전하면서 『보첩을 곧 상재하게 되었으니, 그대가 서문을 지으라』하더니 금년 동짓달에 종 형이 또 서신을 보내와 보첩 일이 곧 준공된다고 하면서 승락하길 몹시 급히 토책하였다. 불녕이 비록 우둔하고 글재주가 없으나 감히 명대로 아니하랴!

가만히 생각하건데, 주가 쇠미해지면서 부적이 없어지고 보첩이 생겼다. 이를 성씨에 연계하면 합함이 있고, 이를 동종에 통합하면 순서가 있게 되며, 부회 를 물리치고 삼유를 분가하여 오직 명분을 바르게 분변하기에만 조심스럽게 하였다. 이는 일가언을 만들어 국서의 미치지 못함을 보완하는 것이니 이를 명명하여 돈사라 한들 그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동종에게는 상세하게 하고, 이성에게간략하게 한 것과 같은 것은 이것이 우리 동종을 위하여 만든 보첩이기로서니, 이는 노빈은 슬을 먼저하고 설을 뒤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그 대략이다.

고인이 세록으로써 불후라 하지 않았으니, 가령 종인들로 하여금 이 보첩을 보고 위연히 선덕에 대하여 생각함이 있어서 유연히 약연히 우리 조선들의 생적을 따르게 한다면 입덕입공입언이 넉넉하여 썩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장차 이를 어찌 피하겠는가? 만일 고금 사람이 서로 미치지 못한다 하여 띠가 바람에 풍미하고 파도가 물결 따라 흐르듯 세상의 추세에 맡겨 떨쳐 쇄신함이 없더라도 스스로 현달하여 상서롭지 않을 것이 없음에 크게 될 것이다.

이 보첩이 어찌 보대를 다른데 돌리고 분화만을 자랑하는 것이겠는가? 요컨데 기왕의 조선을 빛내고 방래할 자손을 면려하여 선의를 뒤따라 구문을 떨구지 않는 것은 선의 선인 것이다. 그리고 소목을 순서 있게 펴고, 소척에 까지도 반드시 미쳐서 꼭 믿어 전하고 꼭 증빙하여 믿게 하는 것이다.

당세에 보첩을 논함에 송대에는 구양씨와 소씨를 말하고, 명대에는 이씨와 교씨를 말하나, 외람스럽지만 나는 『그 지극한 것이 그 지극함이 못된다』하겠다. 예에 이르기를 『천도는 친속을 친하는 것이다』하였다. 조선을 높이기 때문에 동종을 공경하고 동종을 공경하기 때문에 일족을 수합하며, 궁극적으로는 예악이 밝게 구비되고, 종묘와 사직이 이를 힘입는 것이니 이것이 주도이다. 또 이르기를 『예란 민중의 벼리다』하였으니 이는 주례이다. 주례를 잡아 주도를 행하면 어찌 반드시 그 사람이 없겠는가? 집집마다 주례 주도있기를 날을 잡아 기다린다.

세사(歲舍) 임오(壬午인조 20 1642) 지월(至月동지달) 하완(下浣하순)에 금양군(錦陽君) 박미(朴?)는 두 번 절하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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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족보 임오보(壬午譜)와 박미(朴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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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10-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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