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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어학연구회 ‘ㅎ’ 받침 논쟁에서 승리하다!

조선어학연구회 ‘ㅎ’ 받침 논쟁에서 승리하다!

동아일보 ‘ㅎ’ 받침 사용 폐지…미군정 때 재사용
[2020-04-10 오전 9:11:43]
  
철원 출신의 민족국어학자 박승빈이 이끄는 조선어학연구회가 1930년대 받침 논쟁의 승리자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종철 철원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은 동아일보는 1933년 4월부터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한 새받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용상의 불편과 독자들의 비판으로 인하여 1935년 1월부터 ‘ㅎ’ 받침(놓, 많, 곯)의 사용을 중지했다. 또한 예전부터 사용하지 아니하였던 ‘ㅆ’ 받침은 처음부터 채용하지 않았다고 10일 밝혔다.
즉 동아일보는 앉, 없 등의 몇 개 받침 및 초성 쌍서(ㄲ ㄸ ㅃ ㅉ)만을 제한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동아일보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전면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고 박승빈이 이끄는 조선어학연구회가 ‘철자법 논쟁’에서 패했다고 인식했다.
소설가 장혁주는 어문운동과 문학 이에 대한 몇가지 제언(동아일보 1935. 1. 2)이라는 글에서 ‘동아일보가 ㅎ 받침을 독자들의 불만으로 인하여 최근에 사용을 중지했다’며 ‘동아일보 이외 다른 신문들은 아직 한글식 신철자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조선총독부는 언문철자법(1930)을 개정하면서 표음식 철자법을 유지하는 한편 ㅎ, ㅆ 받침은 학문적·실용적 이유로 채택하지 아니했다. 이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에 ㅎ, ㅆ 받침을 포함했으나 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또한 윤치호 전 독립협회장, 석전 박한영, 육당 최남선, 호암 문일평 등 지식인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최현배가 미군정 학무국 편수과장이 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됐다.
최종철 연구위원(50)은 “매일신보는 처음부터 조선어학회의 새받침을 사용하지 아니했다”며 “청소년의 어문생활과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 ‘ㅎ’ ‘ㅆ’ 받침을 폐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신미대사 등이 범어(梵語)에 받침을 8자만 쓰는 것을 보고 훈민정음에 8종성법을 규정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경성제국대학 금택장삼랑(金澤庄三郞) 박사와 어윤적·지석영(전 국문연구소 위원), 김태준, 홍기문도 ㅎ 받침의 사용을 반대했다
<철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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