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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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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차 무술보 (1958년) 서문
제6차 무술보 (1958년) 서문

세보명     무술보(戊戌譜)  
발행연도  1958(무술)
권수     17권(활 인)
발행지   대전
서문(序文)   박승훈(朴勝薰)

무릇 보첩이 소목을 밝히고 종지를 분변하는 것은 조선을 높이고 일족을 수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의리를 선배들이 일찍이 서문에서 한번뿐이 아니라 여러 차례 적었다. 진실로 이 의리를 체구하고자 할진대 충효를 극진히 하고 근검을 힘쓰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조종이래로부터 적덕누인하여 비휴가 무궁하니 그 자손된 이가 어찌 그뒤를 계승하여 보응을 받고 복록을 누리지 아니하랴? 맹자에 이른바 『창업 수통하여 계승하게 할 뿐이다』란 말은 이를 이름이다.

우리 박씨는 신라(新羅)로부터 나와 고려(高麗)를 지나고 한국(韓國)에 이르기까지 면원(綿遠)하고 혁현(赫顯)하였다. 도학의 융성함과 문장의 화려함이며, 열렬하게는 절의(節義), 우뚝하게는 공업(功業)으로부터 사환(仕宦)의 영달(榮達)에 이르기까지 헌칠하게 서로 잇달아서 비록 갑족(甲族)이라 호칭하는 어 느 타성(他性)으로도 능히 견줄 자가 없을 것이니 어찌 까닭 없이 그러하랴?

능히 조종의 수립과 전수하는 구장을 생각에야 하기 조선(祖先)을 욕되게 함이 없어서 일족을 보전하고 일가를 마땅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이에 어긋나면 비록 보첩을 해마다 편수하고 날마다 시송하여 소목과 종지의 분변에 훤한들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조례를 인시체의하여 구관을 조금 고친것과 같은 것은 자질 구레한 일이다.

아! 세급이 내려갈수록 세변이 더욱 심하여 고가세족이 많이 벌열을 잃고 유업을 떡구었다. 무릇 우리 종인들은 척연히 서익속에서 탁립하지 않으면 되겠는 가? 일을 마치면서 망녕되이 조선을 받들고 일족을 보전하는 뜻으로써 여러 종인들에게 고하니 여러 종인은 생각해 보라. 고인이 이르기를 『복추하기 쉬 움이 터럭을 불사르는 것과 같다』하였다. 하물며 지금 세상이 또 어떤 세상인가?

무술(1958년) 박승훈(朴勝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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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사 都有司      야천 활당공후 活塘公后   승훈(勝薰)
서문 序文            야천 활당공후  活堂公后   승훈(勝薰)
족보편찬위원회    위원장 승훈(勝薰)  /   부위원장 계서(啓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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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10-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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