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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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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박윤수, 좋은 인품보다는 좋은 목민관이 먼저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좋은 인품보다는 좋은 목민관이 먼저 

1794년(정조 18) 경기도 광주 죽산 양성 암행어사 박윤수

흉년이 심한 경기도 지역에 암행을 간 박윤수가, 경기도 양성에서 인품은 고매하지만 아랫사람을 잘못 관리하여 백성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고을의 수령을 벌 주었다.

정조 18년(1794년), 42세의 부수찬 박윤수는 임금의 명을 받고 광주 죽산 양성의 암행어사로 나가게 되었다.
이번 암행은 박윤수뿐만 아니라 여러 젊은 관리들이 임금의 명을 받고 나서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 지역이 경기도로 국한되어 있고, 책임구역도 어사 1인당 두서너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만큼 어사들은 자신이 맡은 고을의 사정을 구석구석 살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암행어사를 대거 파견하게 된 것은 나라 전체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계가 오늘 내일 하는 형편인데다, 그중 경기도가 가장 극심하기 때문이었다.
정조 임금은 이번 흉년에 특별히 백성을 돌보는 명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정퇴와 대봉이라는 획기적인 시책이었다. 즉, 환곡 갚을 기한을 뒤로 미루어주는 것이 정퇴요, 세를 쌀 대신 돈이나 다른 것으로도 바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봉이었다.
이는 흉년을 맞은 백성들에게 실로 단비와 같은 시책이었다. 나라에서 정한 쌀의 공정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낮기 때문에, 돈으로 대신 내면 백성들에게 그만큼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가뜩이나 흉년인데다 나라에 진 빚과 세금 때문에 허덕이던 백성들로서는 수많은 시름 중 하나라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책은 지난 가을인 9월 22일, 임금의 탄신일을 맞아 특별히 내려졌다.
이번 경기어사들의 주요임무는 임금이 내린 시책이 각 고을에서 올바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박윤수도 이러한 임무를 맡고 광주와 죽산을 돌아본 뒤, 이제 막 양성으로 들어서려는 참이었다.

양성으로 들어오기 전, 박윤수가 돌아본 광주는 부윤 서미수가 비교적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백성들이 한시름 놓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죽산 부사 유인철은 아랫사람을 잘못 기용하여 온 고을에서 비난을 사고 있었고, 더불어 백성들도 광주에 비해 고통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박윤수는 지나온 두 고을의 목민관을 보면서, 목민관 한 사람의 자질과 책임감이 전체 고을 백성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목민관이란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다. 이번에 찾아갈 양성 고을도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면 수령의 인간됨과 자질 그리고 능력까지도 훤히 꿰뚫을 수 있을 터였다.

양성현의 상황은 거쳐왔던 두 고을보다 더 나쁜 상태였다. 곳곳에서 굶주리고 병든 백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발 앞서 들여보낸 수행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재해를 입은 땅의 결수를 나누어 면세하는 표재도 시행치 않았고, 재해를 입은 백성의 집을 등급별로 매겨 진휼 등급을 정하는 초호도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을 수령의 인간됨이 한눈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몸소 알아볼 겸, 박윤수는 양성현 전체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마을 길에 접어들어 몇 걸음 떼놓지 않았을 때였다. 한눈에도 남루한 농가 안이 별스럽게 부산한 것이 보였다. 대놓고 떠들썩한 것은 아니었으나, 집안 식구들이 들락날락 하는 품이 어째 범상치 않은 상황으로 보였다.
박윤수가 모른 척 뒷길로 돌아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려고 짐을 싸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사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부산하게 이삿짐을 싸고 옮기고, 한편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일을 돕네 어쩌네 하며 떠들썩해야 마땅할 터.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도 조용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당에는 보초인 듯 밖을 경계하는 아이도 하나 서 있었다. 박윤수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사노 점봉과 청파 역졸 박으로 하여금 그 집의 동정을 살피게 놔두고, 주막으로 돌아왔다.


밤이 꽤 이슥하도록 박윤수는 자리를 펴지 않고 정좌한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점봉이 황급히 뛰어들어와 낮에 본 그 집 식구 전체가 등이며 머리에 짐을 이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박윤수는 속히 수행원들을 데리고 동네 어귀로 달려갔다. 예상은 적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가의 일가족이 남부여대하여 동네 어귀로 접어들었다. 한눈에 보아도 야반도주가 틀림없었다. 박윤수는 조용히 수행원 몇 명에게 눈짓을 하여 일가족이 가는 길을 저지하도록 하였다.
장교와 역졸 몇 명이 일가족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그들은 자지러질 듯이 놀라더니 죽어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실로 필사적이었다. 박윤수의 수행원들도 관아에서 내로라 하는 장정들로, 뜀박질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그들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참 동안 숨막히는 경주가 계속된 후, 수행원이 겨우 아이 하나를 붙잡았다. 그러자 앞서 달려가던 어른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박윤수 일행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사람들은 박윤수 일행이 양성의 동헌에서 나온 관리들인 줄 알고 무조건 사죄하며 엎드렸다. 박윤수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그중 가장인 듯한 자가 나서며 울먹였다.
“나리들, 제발■ 환자(환곡)는 조만간 갚겠습니다요. 지금 저희는 도망가는 것이 아니옵고, 이웃고을 친척에게 일단 애새끼라도 맡긴 뒤, 한양 가서 삯일에 품팔이라도 하면서 돈을 모아 갚으려고 한 것입니다요. 그러니 나리, 제발■.”
일가족이 울먹이며 박윤수 일행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통사정하는 모습은 너무도 가련하여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박윤수는 이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물었다.
“환곡 때문에 야반도주하는 것인가?”
사내는 그제야 박윤수 일행이 양성 관아의 관리가 아님을 알아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박윤수의 말에 대꾸도 않은 채, 대뜸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대체 우리 가족을 왜 잡았느냐는 표정이었다.
박윤수는 재차 물었다.
“환곡 빚이 많은가?”
“그건 왜 물으시오?”
퉁명스런 대답이었다.
이때 훈련도감의 이장교가 대뜸 나서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이분은 암행어사이시다.”
그러자 사내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다시금 고개를 조아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박윤수는 쉽게 신분을 발설한 이장교를 나무라는 표정으로 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차피 고을 내막을 상세히 들으려면 신분을 밝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환곡은 지난 9월에 어지신 금상께옵서 기한을 연기해 주셨거늘, 어찌 이렇게 도망을 가느냐?”
그러자 남자가 조아렸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나리? 어제도 관아의 이서배들이 와서 한바탕 난리치고 갔는걸입쇼. 미뤄졌다는 이야긴 금시초문입니다요.”
“뭐라?”
“온 고을이 지금 환곡 빚 때문에 난리가 아닙니다. 저만 해도 제가 갚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동생 녀석과 사촌이 한꺼번에 줄행랑을 놓아버리는 통에 그만...”


“환곡 갚는 기한이 늦춰진 것을 모른다 이 말인가?”
“예. 온 고을 사람 중에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요.”
임금이 진휼 윤음(綸音 : 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 오늘날의 법령과 같은 위력을 지닌다.)을 내린 지가 어언 두 달이 지났건만, 이를 아는 사람이 고을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필시 수령이 이를 백성에게 알리지 않고 그 업무를 방기한 것이렷다.
양성 현감의 됨됨이는 만나지 않아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박윤수는 다음날 양성 관아에 출두할 것을 결심하고는, 일가족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오늘 일은 일절 입밖에 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른 아침 박윤수는 수행원들을 모아 양성 동헌에 출두하였다. 양성 동헌의 이서배들이 혼비백산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었다. 박윤수는 권순이 무척 포악하고 사나운 작자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권순은 얼굴이 희고 깨끗하며 말씨도 공손한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선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박윤수는 권순에게 요모조모 말을 시켜보았다. 역시 어느 모로 보나 포악하고 사나운 탐관오리와는 먼 인물로 보였다.
예상한 바와 너무 다른 권순의 모습에 박윤수는 일순 마음이 흔들렸다.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닐까? 수행원들의 정보 수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어제 본 그 일가족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박윤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객사로 들어가 제반 문서들을 들일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문서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박윤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다. 양성 고을의 행정은 분명히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잠깐 본 권순의 온후한 성품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듯한 갖은 악행들이 발각되었다.
박윤수는 다시금 고을에 수행원들을 풀어 권순과 관련된 소문들을 수집해 오게 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권순의 행각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양성 고을 이서배와 향임들이 짜고 저지른 짓이었다. 권순은 아랫사람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수령이었던 것이다. 온화한 성품이나 총명한 머리로도 아랫사람을 다잡지 못한 것은 그 사람됨의 기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섰다.

박윤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것이 수령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의 인품은 훌륭하나 아랫사람을 다스리지 못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수령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하던 박윤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야반도주하려던 일가족의 가련함이 박윤수의 결정을 쉽게 해주었다. 수령이 아무리 인품이 고매하고 부정을 모르는 자라 하더라도, 아랫사람이 잘못해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그 또한 수령의 책임이라고, 아랫사람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이 바로 선정의 초석이라고 말이다.
박윤수는 과감하게 권순을 논죄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아랫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물어 권순을 파직하였다.

참고자료

일성록 :
정조 18년 11월 16일
경기 지역에 파견된 암행어사와 적간(摘奸)나간 사관(史官)이 서계와 별단을 올립니다.
광주(廣州), 죽산(竹山), 양성(陽城) 등 3개 읍에 파견된 어사 박윤수(朴崙壽)가 서계를 올려 보고합니다.
일. 양성(陽城) 현감 권순(權栒)은 성품이 부드럽고 착하지만, 그곳의 풍속이 억세고 사나워서, 위엄으로는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총명함으로도 간사함을 살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30여 석(石)의 벼와 100여 냥의 전(錢)을 향청(鄕廳)을 수리하는 비용이라고 칭하여 면임(面任)과 이임(里任)에게 거두고는, 이를 모조리 간사한 향임(鄕任)에게 맡겨서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불법(不法)적인 일이고, 또한 자기가 독차지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백성의 원망을 초래하였으니, 이 한가지 일로 미루어 생각한다면 그가 베푸는 정사를 알 수 있습니다. 표재(俵灾 : 재해 입은 결수[結數] 나누어주기)와 초호(抄戶 : 호의 등급을 선정하기)는 지금 눈앞에 닥친 절박하고 시급한 임무인데 아직도 거론하지 않았고, 국왕의 성은(聖恩)이 담긴 윤음(綸音)을 마을마다 베껴서 돌리는 것은 모든 읍(邑)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홀로 본읍(本邑)의 경내에서는 애초에 마을마다 베껴서 돌리는 일 자체가 없어서, 양성(陽城)의 백성들이 분수(分數)를 정해서 정대(停代 : 정퇴[停退]와 대봉[代捧])하는 특별한 은혜를 전혀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고을의 수령된 몸으로 모두 이향(吏鄕)에게 맡겨버리고 전혀 일에 힘쓰지 않고 손대는 일마다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니, 재해를 입은 고을에서 임금의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을 미루어 스스로 다짐하는 책무를 맡기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수령에게는 책망하여 파직하는 규정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정조실록 :
광주 죽산 양성 3읍의 어사 박윤수가 서계하기를,
“양성 현감 권순(權栒)은 정령을 엄하고 급하게 단속할 만한 위엄도 없고 간사한 것을 살필 만한 명찰함도 없습니다. 마을에서 돈을 거두는 것은 불법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세를 견감해주기 위해 호를 뽑는 것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견책하여 파직하는 법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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