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홈페이지:::
 
::: 자랑스런 반박인 :::
본 게시판은 명문대가의 음덕을 이어받아 근. 현대를 힘차고 왕성히 곧게 살아가는 자랑스
런 반남박씨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로그인 한 후 회원이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0
Name  
   박찬무 
Homepage  
   http://www.bannampark.org
Subject  
   박우원, 수해피해를 가짜로 올린 수령 고발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수해피해를 가짜로 올린 수령을 고발하다

1779년(정조 3) 호서 암행어사 박우원


수해피해를 가짜로 올린 수령을 적발하고 이를 임금께 보고한 암행어사 박우원 이야기.



1778년 늦가을. 호서 암행어사 박우원은 태안으로 접어들었다.
충청도에 암행어사가 파견된 것은 선왕인 영조 말년 이후 처음이었다. 오랜만의 암행인 만큼, 충청도에는 돌아볼 곳이 많았다.
올해 나이 39세로 관직에 오른 지 5년 된 신예 관료 박우원에게 이번 충청도 암행은 길고도 긴 여행길이었다. 지난 봄 임금의 명을 받아 몸을 숨기고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째. 어느덧 계절도 겨울로 치닫고 있었다.

충청도에서 세 계절을 넘기고 겨울을 맞이하는 박우원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가 돌아본 충청도는 작년에 임금이 내리신 진휼 정책이 제대로 지켜져 극심한 피해 없이 1년을 넘겼다. 고향을 떠나 거리로 떠도는 백성의 수도 한결 줄었고, 못 먹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도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암행어사로 막 내려왔던 초봄에는 아직까지 진휼 정책이 자리를 못 잡은 탓에 몇몇 지역에는 유랑걸식의 조짐이 보였지만 그것도 곧 진정되었다. 박우원이 우려하던 바와는 달리 충청도 백성들은 비교적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박우원이 암행어사로 내려와 몇몇 부패한 관아에 출두한 이후, 이곳 인심은 많이 안정되어 갔다. 충청도 일대에 암행어사가 파견되었다는 소문이 한 차례 돌자, 각 고을 수령들이 각별히 조심하며 목민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 덕분이었다.
어떤 고을에서는 선정을 베풀어 칭찬할 만한 수령도 나왔다. 박우원은 호서 암행어사로 파견된 후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느끼면서, 객지 생활의 고생도 잊을 수 있었다. 또한 흉년에 일부러 충청도로 암행어사를 파견하신 임금의 사려 깊음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곤 하였다. 게다가 작년에 내린 진휼책은 고을 관아에도 백성에게도 무리가 없이, 모두가 편안하게 일이 흘러가도록 마련된 것이었다. 새삼스레 임금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우원은 이즈음에는 가급적 출두보다는 각 고을의 문서를 살피는 것으로 민정을 파악하였다. 너무 잦은 출두가 이웃고을에 암행어사 소문을 퍼뜨려, 정작 탐오한 수령을 잡아내지 못할까 우려해서였다.
이번 태안 길도 출두 없이 문서를 살피는 것으로 수령의 정사를 가늠해 볼 요량이었다.

태안은 몇 년째 여름마다 홍수가 일어나 땅이 쓸려나가고 토사가 쌓이는 통에 지형지물이 송두리째 바뀐 판국이었다. 따라서 몇 년 전부터 수해로 유실되거나 농지 기능을 할 수 없는 땅에 대해서는 재해를 입은 논, 즉 재결이라 하여 세금을 면해주고 있었다. 비 피해로 땅을 잃은 백성들은 재결을 받고 이 땅이 농지로 회복될 때까지 면세의 혜택을 받았다. 재결은 땅을 잃은 백성들에게 무엇보다도 제대로 시행되어야 할 제도였다.
태안은 홍수가 매해 여름 몇 년이나 거듭되다 보니 이와 관련한 관리가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워져 새로 토지를 측량할 필요가 있었다. 박우원은 이번에 태안에 가서 이런 것을 중심으로 살펴볼 요량이었다, 박우원은 수행원들을 먼저 태안에 파견하여 비밀리에 고을의 사정을 알아보게 하고, 자신은 조금 느지막히 태안으로 접어들었다.

단출하게 가노 돌석만 데리고 태안군 동헌 앞에 도착한 박우원은 사졸에게 마패를 보이고 자신이 어사임을 밝혔다. 사졸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혼비백산하여 동헌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몇 차례 출두 없이 관아에 들어갔지만, 암행어사를 맞이하는 관아는 늘 긴장하고 혼비백산하였다. 죄가 없는 자들에게도 암행어사란 존재는 어쩐지 껄끄럽고 오금이 저리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박우원은 웃음으로 이를 넘겼다.
곧이어 역시 갑작스런 암행어사의 방문에 놀란 태안 수령 유영진이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동헌에서 집무를 보는 중이 아니었는지, 급하게 의관을 차려입은 기색이 역력했다. 박우원은 그런 모습에 별로 개의치 않고 곧바로 동헌 객사로 들어갔다.

본래 박우원이 태안에 온 이유는 새로운 토지 계측, 즉 양안의 새로운 작성이 가능할지 여부를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홍수로 재해를 입은 토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박우원은 객사에 들어서자마자 호방을 불러들여 재결 장부를 올리라고 명하였다. 호방은 굽신거리며 곧 대령한다고 하였으나, 날이 저물도록 종무소식이었다. 그 대신 들어온 것은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저녁상에 커다란 술병. 심지어 관기까지 몇 명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박우원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차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호방을 불러들여 재결 문건을 들이라고 닦달하였다 그러나 호방은 연신 허리만 굽신거리며 물러나고는 또 감감무소식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잠자리 시중을 들겠다는 관기를 뿌리친 뒤, 박우원은 수령에게 사졸을 보내 다시 한 번 재결 문서를 요구하였다.
이윽고 태안 수령 유영진이 박우원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문서가 아니었다. 박우원에게 먼 길을 왔을 테니 노독이나 풀라면서 인삼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날이 밝으면 차차 문서를 하나하나 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사람 좋은 척 웃는 너털웃음이나 은근히 박우원을 압박하며 달래는 품이 시간을 벌어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다. 유영진을 내보낸 뒤 박우원은 곧장 돌석을 불러들여 먼저 보낸 수행원들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특별히 재결과 관련한 사안을 조사해 오되, 관내에 재결로 면세받은 백성이 몇이며 그 결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아오라고 하였다.

다음날 태안군의 이서들이 갖고 온 문서들은 하나같이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해묵은 사건이나 이미 해결된 사안에 대한 문서가 태반이었다.
박우원은 하루 종일 쓸데없는 문서 속에 파묻혀 지내다가, 저녁에 수령을 불러들여 벌컥 역정을 내었다. 당장 재결 문서를 들이지 않으면 어사의 말에 거역하는 것으로 알고 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영진은 혼비백산하며 다음날 아침에는 반드시 재결 문서를 들이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나갔다.

다음날 박우원의 수중에 들어온 재결 문서는 한눈에 보기에도 급조된 것이 분명하였다. 오래 된 장부에 끼운 새 종이에는 먹도 채 마르지 않은 사람들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박우원은 다시 호방을 불러 전년도 재결 문서를 가져오게 하였다. 확실히 무언가 차이가 있었다. 올해의 재결 수가 확연히 늘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수치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때였다. 박우원의 명을 받고 조사에 나섰던 수행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여 보고를 하였다. 수행원들은 분명히 재결인데도 재결로 인정받지 못해 면세는커녕 과중한 과세로 허덕이는 백성들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또 어느 날 갑자기 관아에서 나와 이유 없이 이름만 받아간 사람들의 명단을 내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재결로 인정받은 토지의 수와 그 면세 혜택을 받은 자의 이름도 함께 보고해 왔다.
박우원은 그들의 보고와 문서를 바탕으로 밤새 꼼꼼히 조사를 한 결과, 재결이 아닌데도 재결로 등록되어 면세를 받은 토지가 허다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게다가 재결 면세를 받았다는 사람들은 모두 재결을 받은 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안의 백성 상당수는 이름만 올렸을 뿐 실제로 토지를 지급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 수가 자그마치 98결이나 되었다.

박우원은 날이 밝자마자 관아에서 서류 작성을 주업무로 하는 서원의 우두머리, 즉 도서원을 붙잡아들여 사실을 조사하였다.
여기서 박우원은 수령 이하 6방의 아전들이 똘똘 뭉쳐 거짓 문서를 만들고, 남은 98결을 나누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박우원은 곧이어 동헌으로 나아가 관아의 창고를 봉하고 유영진의 파직을 건의하였다.
수령과 그 이하 아전들을 하나하나 잡아들여 그 죄를 밝혀보니, 가장 큰 죄인 재결문서 위조 외에도 소소하게 저지른 죄가 막심하였다. 박우원은 곧바로 한양에 보고서를 올리고 유영진을 벌로 다스리게 하였다.


참고자료

일성록 정조 3년 기사
차대(次對)하였다. 호서 암행 어사(湖西暗行御史) 박우원(朴祐源)이 복명(復命)하고 나서 서계(書啓)를 올려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 이정병(李鼎炳), 병마 우후(兵馬虞侯) 이윤원(李潤元), 청양 현감(靑陽縣監) 이용중(李龍中), 제천 현감(堤川縣監) 송계상(宋繼相), 면천 군수(沔川郡守) 정동현(鄭東顯), 보은 현감(報恩縣監) 서퇴수(徐退修), 서산 현감(瑞山縣監) 박지홍(朴志泓), 평택 현감(平澤縣監) 유한응(兪漢膺), 아산 현감(牙山縣監) 윤광, 전의 현감(全義縣監) 홍건(洪楗), 진잠 현감(鎭岑縣監) 홍성호(洪成浩), 진위 현령(振威縣令) 박좌원(朴左源), 서원 영장(西原營將) 이형묵(李亨默)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정상(情狀)에 대해 논핵하였다. 이정병·이윤원·이용중·송계상은 나문(拿問)하고 정동현 등 9인은 파직시켰는데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복주(覆奏)를 따른 것이다. 박우원이 또 별단자(別單子)를 올리기를,
"보은(報恩)의 사인(士人) 송재적(宋載績)의 아내 홍씨(洪氏)는 남편을 따라 죽은 정절(貞節)이 있고 결성(結城)의 고(故) 현리(縣吏) 장명항은 그의 아내와 딸과 더불어 한 집에 세 사람의 효열(孝烈)이 났으니, 모두 정포(旌褒)하기에 합당합니다. 본도(本道)의 전안(田案)이 문란하니 영동(永同)·옥천(沃川) 두 고을의 예(例)에 의거하여 가장 폐단이 극심한 곳을 가려서 좋은 방향으로 개량(改量)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제천(堤川)은 대동세(大同稅)를 쌀로 상납하고 있는데 이것이 제천 백성들의 끝없는 폐단이 되고 있으니, 청주(淸州)·단양(丹陽)·영춘(永春) 이 세 고을의 예(例)에 의거하여 전포(錢布)로 대납(代納)하게 하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양향청(糧餉廳)·기로소(耆老所)의 둔전(屯田) 가운데 화전(火田)은 둔민(屯民)으로 하여금 기전(起田)하게 하여 그에 따라 전세(田稅)를 받는 것을 한결같이 공부(公賦)처럼 하면 인족(隣族)의 침징(侵徵)으로 인한 원망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각사 노비(各司奴婢)는 내수사 노비(內需司奴婢)의 예(例)에 의거 구안(舊案)을 빙고(憑考)하여 강제로 징수하지 말고 일체 이정(釐正)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치될 듯합니다.”
하니, 빈대(賓對)에서 결정하라고 명하고 어사(御史)를 소견하였다.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
반남박씨 홈페이지 관련글 바로가기
    ■  [ 암행어사 (暗行御史) ]■
--------------------------------------------------------------------------------



0
158 11 5

 no 
 subject 
 name 
 date 
 hit 
 vote 

   박우원, 수해피해를 가짜로 올린 수령 고발

박찬무
2011/02/26 2846 0
97
   박우원, 선정을 베푼 수령

박찬무
2011/02/26 2908 0
96
   박우원, 역적의 고을을 돌아보고 민심을 파악

박찬무
2011/02/26 2703 0
95
   박윤수, 좋은 인품보다는 좋은 목민관이 먼저

박찬무
2011/02/26 2868 0
94
   박규수, 실학의 정신으로 어사 활동(1편)

박찬무
2011/02/26 2781 0
93
   박규수, 실학의 정신으로 어사 활동(2편)

박찬무
2011/02/26 2959 0
92
   박규수, 하물며 벗의 아버지라 한들

박찬무
2011/02/26 2901 0
91
   박선수, 조부의 뜻을 이어 양반 비리 응징

박찬무
2011/02/26 3035 0
90
   박선수, 박지원의 손자, 양반전과 호질을 되새기다

박찬무
2011/02/26 2741 0
89
   朴勝彬의 周時經 綴字法理論 批判 / 申昌淳

박찬무
2010/07/12 3611 0
88
   천하 명필 박시수(朴蓍壽), 봉래동천(蓬萊洞天)

박찬무
2010/05/19 3703 0
87
   누대의 시간이 종부의 행주치마 위로 흐른다 - 서계종부

박찬무
2010/02/04 3844 0
86
   노들에 지는 별(박세당과 박태보)

박찬무
2009/08/30 3851 0
85
   박신헌 가톨릭상지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박찬무
2009/07/22 4202 0
84
   남원 주생면 반남박씨 열녀각.房世挺의 妻 朴氏

박찬무
2009/04/22 4471 0
[1][2][3][4] 5 [6][7][8][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