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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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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우원, 선정을 베푼 수령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선정을 베푼 수령

1779년(정조 3) 호서 암행어사 박우원

공산 고을 판관 이덕현의 선정을 임금께 보고한 암행어사 박우원. 이덕현은 훗날 큰 벼슬자리까지 올랐다.

정조 2년 봄. 호서 암행어사 박우원이 공주를 거쳐 공산으로 접어들었다. 호서 어사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경기 인접 지역에서 많은 탐관오리를 목도하고 논죄하였던 박우원은 새로 들어온 공산 땅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때는 바야흐로 보릿고개로 넘어가는 중이라, 아무리 나랏님이고 하느님이라 한들 굶주린 백성들을 모두 구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공산에 들어가도 굶주림으로 누렇게 부황이 뜬 사람들이 파란 보리밭만 노려보며 힘없이 쓰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여느 고을에서는 사람들이 보리밭에서 일할 생각은커녕 몸도 못 가눌 정도여서 모두 양지바른 데 엎드려 있기가 일쑤인데, 공산 마을은 초입부터 보리밭에서 일하는 일꾼들로 가득하였다. 모두 얼굴에는 혈색이 돌고 있었고, 일하는 손길도 기운찼다.
어허… 이런 일도 다 있는가?
농사꾼이 농토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건만, 내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만 봐온 박우원은 이 모습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인근 마을 주막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활기에 넘쳤다. 밭일을 마치고 한잔 하러 들어온 듯한 장정들이 밝은 웃음을 흘리며 요새는 살맛난다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박우원의 호기심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박우원은 수행원인 청파 역졸 이우식(필자가 임으로 만들어낸 인물임)에게 술자리에 끼어 이야기나 좀 듣고 오라고 시켰다.

이우식은 원래 변죽이 좋은 사람으로, 어느 고을에 가나 사람들과 곧잘 어울려서 각 고을 소식을 낱낱이 잘 캐내곤 했다. 수령의 비리뿐만 아니라 고을의 자그마한 일부터 미담까지도 모두 알아내서 보고하는, 박우원의 듬직한 오른팔이었다. 이번 암행길에서 박우원은 이우식의 덕을 단단히 본 셈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우식을 보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게 하였던 것이다.
역시 박우원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이웃 고을에서 처결한 일들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마을 사람들과 두어 순배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뒤 이우식이 돌아왔다.
그런데 들어오는 이우식의 얼굴은 조금 당황한 듯이 보였다.
"왜 그러는가?"
"거 참,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동안 속고만 살았는지, 이상한 지방 관리들만 보아서 관리라면 무조건 못 믿는 건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이우식을 다그쳐서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공산 고을 판관이 사람됨됨이가 뛰어나, 그가 온 이후에는 쓸데없이 요역에 불려 나가는 일이 없어져서 농사짓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역계의 폐단이 없어진 덕분에 백성들이 모두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같은 보릿고개에도 진휼이 원활히 이루어져 백성들 중에 굶는 자가 없고, 모두 보리를 거둬들일 때까지는 부족하나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세금도 줄어들어 부담이 한결 줄었다며 다들 환하게 웃더라나. 이 모든 일은 지금 판관이 오고부터 이루어진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그가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는 판이라고 하였다.
박우원도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초봄에 내려와 늦봄까지, 어느 고을로 가든 들리는 소리라곤 지방 관리에 대한 백성의 원성뿐이었거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는가? 정말 있다면 칭찬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박우원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날 아침. 박우원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공산 관아로 나아갔다. 관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마당에서는 한창 진휼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동헌 마루에는 판관이 나와 앉아 아전들이 진휼하는 모습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었다.
공산 판관의 이름은 이덕현이었다. 박우원은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졸에게 마패를 보이며 암행어사임을 알렸다. 사졸은 처음에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으나 곧 동헌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아뢰었다. 판관 이덕현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의연하게 관아 밖으로 나와 박우원을 맞아들였다.

객사로 들어선 박우원은 일단 객사의 치장이 조촐하며 소박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탐관오리들이 대개 관아 치장에 힘쓰는 것을 아는 박우원은 다른 관아에 비해 소박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헌과 객사를 통해 이덕현의 됨됨이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들어온 밥상도 소박하되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였다.
보통 암행어사가 출두 없이 서류를 살피기 위해 관아에 머물 경우, 해당 지방관은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며 암행어사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갖은 수를 쓰곤 했다. 산해진미를 올린 밥상과 주안상을 들이밀며 뒤로는 뇌물을 내밀기까지 하는 법인데, 공산 판관 이덕현의 대접에는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박우원의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아전들이 서류를 들고 박우원의 지시를 기다리며 객사 앞에 나와 있었다.
밥상을 물리고 잠시 쉬려던 박우원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결국 각기 문서를 받아들여 하나하나 살펴보니 모두 정연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 어느 구석 하나 농간이나 부정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박우원이 객사에 머물면서 서류를 살피는 동안, 이덕현은 한 번도 박우원을 만날 것을 청해오지 않았다. 보통은 밤이면 밤마다 암행어사에게 만나기를 청하며 술자리를 같이하려고 하는데, 이덕현은 일절 그러한 일이 없었다. 박우원은 그런 이덕현이 오히려 섭섭할 지경이었다.
모든 서류를 다 살피고 아무런 흠을 찾아내지 못한 박우원은 판관 이덕현의 선정에 감탄하였다.
그날 저녁, 이덕현이 박우원을 뵐 것을 청하여왔다. 이덕현의 처소에서 조촐한 술자리나마 함께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이덕현의 처소에 들어서자 박우원은 깜짝 놀랐다. 너무나 소박했기 때문이었다. 그 흔한 보료나 병풍 하나 없이 한구석엔 책과 목민에 필요한 문서들이 가득 쌓여 있고, 방 한구석에 작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짐작은 했지만 주안상도 소박하고 조촐했다. 그러나 박우원은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흐뭇하고 기뻤다.
"문서더미 속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덕현이 술을 따르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박우원은 짐짓 농담조로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 얼굴 한번 안 내미시더이다."
하고 투정을 부려보았다.
그러자 이덕현은 박우원의 농담에 정색을 하며
"문서를 살피시는데 제가 자꾸 드나들면 공정하게 될 것 같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방해가 될까 봐서요. 혹여 제가 큰 실례를 범한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걱정의 빛이 가득한 그 얼굴이 너무나 소박하고 순수하였다.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박우원은 손사래를 치면서 농담을 접고 그날 밤 이덕현과 오랜만에 즐거운 기분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그후 박우원은 홍충도 감사 이명식과 만나 홍충도의 관할 지방관에 대해서 논하게 되었다. 이명식은 관할 수령 중에 공산 판관 이덕현의 보고가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며 내려간 지시 사항도 가장 빠르게 적용되는데다, 무엇보다도 적체된 송사도 없다고 하면서 이덕현을 칭찬하였다. 박우원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박우원은 임금께 보고할 때도 이덕현을 적극 추천하여 그가 상을 받도록 하였다.

이후 이덕현은 그 청빈함을 나라에서 인정받아 이천 현감을 거쳐 진주 목사, 의주 부윤 등 중요 지방 관직을 섭렵하고 중앙 요직으로 사간원 대사간까지 올랐다.


참고자료

일성록 (정조 3년 3월27일 기사)
'직무유기자들을 파직하고 각종 세금 징수의 폐단을 시정케 하다.'
차대(次對)하였다. 호서 암행 어사(湖西暗行御史) 박우원(朴祐源)이 복명(復命)하고 나서 서계(書啓)를 올려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 이정병(李鼎炳), 병마 우후(兵馬虞侯) 이윤원(李潤元), 청양 현감(靑陽縣監) 이용중(李龍中), 제천 현감(堤川縣監) 송계상(宋繼相), 면천 군수(沔川郡守) 정동현(鄭東顯), 보은 현감(報恩縣監) 서퇴수(徐退修), 서산 현감(瑞山縣監) 박지홍(朴志泓), 평택 현감(平澤縣監) 유한응(兪漢膺), 아산 현감(牙山縣監) 윤광(尹?), 전의 현감(全義縣監) 홍건(洪楗), 진잠 현감(鎭岑縣監) 홍성호(洪成浩), 진위 현령(振威縣令) 박좌원(朴左源), 서원 영장(西原營將) 이형묵(李亨默)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정상(情狀)에 대해 논핵하였다. 이정병·이윤원·이용중·송계상은 나문(拿問)하고 정동현 등 9인은 파직시켰는데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복주(覆奏)를 따른 것이다. 박우원이 또 별단자(別單子)를 올리기를,
"보은(報恩)의 사인(士人) 송재적(宋載績)의 아내 홍씨(洪氏)는 남편을 따라 죽은 정절(貞節)이 있고 결성(結城)의 고(故) 현리(縣吏) 장명항(張溟?)은 그의 아내와 딸과 더불어 한 집에 세 사람의 효열(孝烈)이 났으니, 모두 정포(旌褒)하기에 합당합니다. 본도(本道)의 전안(田案)이 문란하니 영동(永同)·옥천(沃川) 두 고을의 예(例)에 의거하여 가장 폐단이 극심한 곳을 가려서 좋은 방향으로 개량(改量)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제천(堤川)은 대동세(大同稅)를 쌀로 상납하고 있는데 이것이 제천 백성들의 끝없는 폐단이 되고 있으니, 청주(淸州)·단양(丹陽)·영춘(永春) 이 세 고을의 예(例)에 의거하여 전포(錢布)로 대납(代納)하게 하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양향청(糧餉廳)·기로소(耆老所)의 둔전(屯田) 가운데 화전(火田)은 둔민(屯民)으로 하여금 기전(起田)하게 하여 그에 따라 전세(田稅)를 받는 것을 한결같이 공부(公賦)처럼 하면 인족(隣族)의 침징(侵徵)으로 인한 원망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각사 노비(各司奴婢)는 내수사 노비(內需司奴婢)의 예(例)에 의거 구안(舊案)을 빙고(憑考)하여 강제로 징수하지 말고 일체 이정(釐正)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치될 듯합니다."
하니, 빈대(賓對)에서 결정하라고 명하고 어사(御史)를 소견하였다.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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