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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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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우원, 역적의 고을을 돌아보고 민심을 파악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역적의 고을을 돌아보고 민심을 파악하다

1808년(정조 3) 호서 암행어사 박우원

어사 박우원이 충청도 지방을 여행하며, 충청도 지방에서 문제를 일으킨 홍양해와 심혁에 대한 민심을 파악하니 충청도의 민심은 역적이 아닌 임금의 편임을 파악했다.  

정조 2년, 39세의 박우원은 암행어사로 호서지방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암행 길에 여러 가지 임무를 띠고 있었다. 진휼 정책은 잘 쓰이고 있는지, 작년에 혁파한 노비 추쇄(부역이나 병역을 기피한 사람이나 도망친 노비 등을 모조리 찾아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는 엄히 지켜지고 있는지, 새로 토지를 측량하는 것이 가능한지 어떤지, 호서지방에 열녀와 충신은 있는지... 그리고 또 특별한 하나의 임무는 지난해에 일어난 역적 사건의 주역인 홍양해와 심혁의 고향 민심은 어떤지를 각별히 살피는 것이었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임금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특히 지금의 대왕대비이자 정조보다 나이가 어린 정순 왕후가 19세에 영조의 계비가 되면서, 정조의 왕세손 시절은 피눈물로 얼룩졌다.
아버지(사도세자)와 할아버지(영조) 간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아버지가 할아버지 손에 죽는 끔찍한 모습을 직접 보아야만 했던 어린 정조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금상의 위치에 있고 자신은 왕세손일 뿐이던 시절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영조를 부추겨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은 새로 들어온 어린 왕비의 외척인 경주 김씨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득세는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왕세손이 된 이후까지도 계속되었다.
경주 김씨는 왕세손이 임금이 된 후 아버지의 원수들에게 보복할 것이 두려워 끊임없이 세손을 배척하였다. 늙은 왕을 도발하여 세손을 눈밖에 나게 하고, 세손의 외가를 역적으로 모는 등 갖가지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세손은 오로지 학문을 닦고 처신을 조심하면서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이다.
정조 임금의 이렇듯 파란만장한 과거는 즉위 후 곧바로 음모를 꾸민 자들에 대한 논죄로 보상되기 시작했다.
의붓할머니 정순 왕후의 오빠 김귀주를 잡아들여 그동안의 죄를 물었을 뿐만 아니라, 김귀주의 편을 들면서 충청도 지방에서 문제를 일으킨 홍양해와 심혁 등에게도 죄를 물었다.
홍양해와 심혁이 임시로 머물면서 문제를 일으킨 지역은 공주 인근이었다. 격노한 정조는 공주를 강호하고 이전에 공충도라 불리던 것을 홍충도라 부르게 하였다.
이즈음에 어사 박우원이 호서, 즉 홍충도로 암행어사 파견을 나간 것이었다. 백성의 하루하루 삶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고을의 민심이 궁금하던 임금은 박우원에게 은밀히 홍충도의 민심을 알아볼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임금의 걱정은 단지 우려에 불과하였다. 홍양해와 심혁은 호서에 머무는 동안 지역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홍양해와 심혁의 무리들은 왕비의 오빠인 김귀주의 스승으로서, 그 권세를 등에 업고 호서에서 방약하게 굴었던 것이다.
백성들을 함부로 압박하고, 권세를 이용하여 지방관을 내리누르면서 무소불위의 귄력을 누렸음이 판명되었다. 호서지방의 백성들은 오히려 홍양해 일파가 주살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박우원은 타지 사람으로서 충청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겉핥기로만 보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어, 민심을 자극하면서까지 면밀히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연포 인근의 바닷가에 갔을 때였다. 김귀주의 고향인 서산과도 가까운 곳이다 보니 박우원은 바짝 긴장하며 백성들의 태도를 살폈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 들어 한 어부의 집을 찾아 잠시 객으로 머물기를 청하였다. 일개 백성이라 하더라도 민심이 합쳐지면 천심이 되고, 천심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니, 미천한 백성 한 명 한 명의 의견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박우원의 생각이었다.


박우원은 인심 좋게 생긴 어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고을 사정이나 어획량 등을 물어보았지만, 대화 가운데 혹시나 호서지방이 역적의 고향으로 낙인찍힌 데서 비롯된 차별을 몸으로 느끼는지, 그것에 대해 불만은 없는지, 역적인 홍양해와 심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슬쩍슬쩍 에둘러 물어보았다. 심지어는 은근히 홍양해의 편마저 들어보기도 하였다.
그러자 어부는 벌컥 화를 냈다.
“아, 그놈들이 금상께 한 짓은 죽어 마땅하지요. 게다가 여기 홍충도에서도 얼마나 권세를 부렸는지 원... 난폭배들을 몰고 다니며 죄 없는 백성을 닦달하지를 않나, 관아의 관리들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었습지요. 선비께서 홍양해가 같은 글 읽은 축이라고 편을 조금 드시려고 하시는데, 그러시면 저는 선비님이 역적같이 보입니다! 혹시 선비님도 홍양해 잔당 아니십니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 당장이라도 박우원을 관가에 고발하러 갈 태세였다. 박우원은 어부를 겨우 진정시킨 뒤, 자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며 그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말을 꺼냈을 뿐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기처럼 일개 쇠락한 양반이 그렇게 거창한 사람과 끈이 닿았을 리 있겠냐며 너털웃음으로 무마했다.
“홍양해 일당이 주살돼서 여기 호서사람들은 다 통쾌해합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하면서 어부는 말을 맺었다.

다음날 아침, 박우원은 어부와 함께 포구로 나가 고기잡이를 하고 들어온 배들을 구경했다. 포구는 물고기를 사가려고 온 육지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쪽에는 싱싱한 고기를 통째로 팔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고기를 회로 저며 파는 곳도 있었다.
어부는 박우원에게 회 한 접시 먹어보라고 연신 권했다. 싱싱한 생선 맛이 일품이라는 것이었다. 가노인 용팔도 그 말에 회가 동했는지, 박우원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선비 체면에 날것을 먹어도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어부가 권하는 품이 지극한데다 눈앞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보니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권유에 못이기는 체하며 어부를 따라가 한 곳에서 회를 청했다. 용팔은 벌써부터 기대에 들떠 연신 입에 괸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고기를 다듬던 어부가 고기를 칼로 저미면서
“에이, 홍양해 단칼에 쓱! 심혁 너도 죽었다!” 하면서 고기를 자르는 것이었다.
박우원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구나! 호서의 인심은 홍양해와 심혁 편이 아니라 임금의 편이었구나. 임금의 바른 정치가 이런 결과를 끌어냈구나.
바닷가에 앉아 싱싱한 회 한 접시를 싹 비운 박우원과 용팔은 흐뭇한 마음에 탁주도 두어 사발 곁들인 후 연포를 떠났다.

이듬해 봄 박우원이 한양에 도착하여 임금께 보고할 때, 임금은 호서의 여러 가지 사정을 물으신 후 지나가는 얘기처럼 호서의 인심을 흘려 물으셨다. 임금의 고뇌를 십분 이해하고 있었던 박우원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소상히 아뢰었다. 이때 박우원은 임금의 눈가에 언뜻 안심의 미소가 지나가는 것을 본 듯도 하였다.


참고자료
일성록 정조 3년 3월 25일 기사  

이글은 < 암행어사 입니다 > 홈페이지에서 갖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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