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박린(朴璘) 의 자는 사헌(士獻)이고 호는 청라(靑蘿)이며 본관은 반남으로 부사직(副司直) 황(황)의 아들이다. 서기1547년명종정미(明宗丁未)년에 태어났다.25세때 적성감악산 보제암(積城紺岳山菩提庵)에서 문학을 공부하는데 성우계(成牛溪) 이률곡(李栗谷)이 찾아오니 공(公)이 극진히 영접하였다. 손과 주인 사이에 인사를 끝마치고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대의(大義)를 토론하는데 그 강해(講解)에 감복해서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을 잊었었다.공은 친성과 자질이 결백하였으며 기개와 용모가 위대하고 준수하여서 장자(長者)의 풍토가 있었다.
젊어서부터 과거를 보아도 잘 되지 않으니 뒤에 뜻을 경서(經書)에 두고 이것만을 전공 하다가 병을 얻었다. 방안에 조용히 앉아서 속세를 잊어 버리고 이해(利害) 화복(禍福)에 궁통하여 권세에는 조금도 마음을 동하지 앟었고 집이 가난하여도 편안히 하였다.
간혹 시(詩)와 술(酒)로 회포를 풀되 시도 취미만 붙이고 교묘한 것을 일삼지 않었다. 집은 남촌 만리현 (南村萬里峴)에 있었는데 후원에 철라(靑蘿)두어주가 있어 이로써 호를 청라라고 하였다. 성로(成輅)이정구(李廷龜) .이억령(李億齡)등과 좋아하며 시율을 었다. 인조을축(仁祖乙丑)년에 향년 79세로 졸하였다.
(문헌)人物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