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박주(朴洲)에 대하여
미상∼1604년(선조 37). 본관은 반남(潘南). 다른 이름은 박형(朴泂). 자는 형지(泂之), 호는 정산(鼎山).박형(朴泂) 이라고도 함
평도공(平度公) 박은(朴訔)의 6세손으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며, 이중호(李仲虎)에게 배웠다. 반궁체인(反躬體認)과 심사자득(深思自得)에 힘썼으나, 서얼 신분이었기 때문에 벼슬을 단념하고 가르치는데 힘썼다.
《소학(小學)》과 경서(經書) 외에는 가르치지 않았으나, 가르침이 정밀하고 진지하였으며, 문리를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였다. 명종(明宗)·선조(宣祖) 시대의 거의 모든 조신(朝臣)들이 어려서 가르침을 받았다.
예조(禮曹)의 천거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고, 군직에도 올라 종신록(終身祿)을 받았다. 시국이 당론 때문에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자, 문인들도 서로 나뉘어 시시비비를 가르며 스승의 말도 따르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한탄하며 원주(原州) 정산(鼎山)으로 은거하였다.
노수신(盧守愼), 허엽(許葉) 등과 친하였으며, 제자들에게 당론에 참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문장에 능하지 못해 남긴 유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