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박찬(朴璨)의 자는 경집(敬執)이고 호는 동곽자(東郭子)또는 우촌(牛村)이며 본관은 반남으로 주(澍)의 아들이다.
아버지 주(澍)는 문학과 행위가 도져하였으나 벼슬은 하지 않었다.공은 한양에서 낳아서 글읽기를 즐겨하여 여러 가지 학문에 능통하여 이름이 날로 높아져 송방조(宋邦祚) 조정호(趙廷虎) 양응락(梁應洛) 등과 사귀어서 같이 공부하여 교분이 더욱 밀접 하여 졌다.소년(少年)때는 형(兄) 려(黎)와 동강(東岡) 남언경(南彦經)의 문하에서 배웠고 다시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따라 학문을 강마하였다. 서기1590년 선조경인(宣祖庚寅)년 증광사마시(增廣司馬試)에 장원 하였는데 이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철원(鐵原)으로 피란하였다.어버이가 그곳에서 병환이 위독하였는데 끝내 상고를 당하니 관을 메고 가서 흙을 저다가 묘를 만드는데 낮에는 숨고 밤으로만 일을 해서 분묘를 완성하고 그옆에서 떠나지 않었다.甲午年에 또 상사를 당해서 애통하다가 3년간 복을 마치고 10년동안이나 여러번 과거를 치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늦게 수원에서 살며 학문을 즐기고 출세에는 뜻을 두지 않었다.계축년에 돈령참봉(敦寧參奉)으로 제수되었고 을묘년에 제용참봉(齊用參奉)으로 전임되었고 병진년에 직장(直長)으로 승진되었다.
항상 벼슬을 사양하고 돌아가고자 하다가 대에 모후(母后=仁穆大妃) 폐비론이 일어나자 드디어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해에 병으로 향년 53세에 졸하였다.
(문헌) 人物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