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박태초(朴泰初)에 대하여
1706년(숙종 32)∼1762년(영조 38).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길부(吉夫), 호는 아천(鵝川).
고조는 박응복(朴應福)으로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지냈으며 영의정(領議政) 반천부원군(潘川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증조는 박동열(朴東說)로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냈으며,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는데 호는 남곽(南郭)이며, 문장과 덕망이 있었다. 조부는 박순(朴淳)으로 남양도호부사(南陽都護府使)를 지냈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은 후 과업(課業)을 포기하여 외직만을 맡았다. 아버지는 박세휘(朴世彙)로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이다. 어머니는 남원윤씨로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지낸 윤형성(尹衡聖)의 딸이다. 어려서 시남(市南) 유계(兪棨: 1607∼1664)에게서 수업을 하였으며, 17-19세에 향시, 대과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 과거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과업을 포기하고, 대신에 주자의 가르침에 따라 “학문의 도리로써 궁리를 중시하고, 궁리의 기초로써 독서에 매진하며, 그 독서는 거경에 기초하여 뜻을 굳건히 하는 것[所謂爲學之道 莫先於竆理 竆理之要 必在於讀書 讀書之法 莫貴於循序而致精 致精之本 又在於居敬而持志云者 卽法門之指南也]”이라고 여기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창계(滄溪) 임영(林泳)과 도의(道義)로써 친분을 가졌다. 일찍이 1649년(숙종 27) 병조판서(兵曹判書) 윤지선(尹趾善)에 의해서 천거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1743년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1755년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1761년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박광우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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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초 할아버지 후손인데요,호는 경재공으로 알고있습니다. 묘비에서 확인된것입니다.,확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