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남박 인명사전 ::::::
선조님들의 행적을 기록한 작은 반남박씨 인물사전입니다, 기록한 내용들은 각 소종중
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문수면 만방1리에 있다. 열부 박씨는 반남이고 사건(師騫)의 딸인데 17세에 민조현에게 출가하였다가 신행전에 부군(夫君)과 사별(死別)하고 청상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있던 중 이웃의 김조술이란 자가 박열부를 범하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조술은 이에 반감(反感)을 가지고 박씨는 아이를 셋을 낳았고 또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서 허무맹랑한 말을 유포(流布)하여 열부의 체면을 손상하므로 열부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하여 관아에 가서 울며 호소하였으나 조술의 금력에 의하여 관의 처리는 부진하고 오히려 열부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환됨에 열부는 억울함을 참다 못하여 마지막 결심으로 다시 관에 가서 거듭 호소하다가 사태가 불리함에 칼을 빼어 자결하니 관비(官婢)가 열부의 시신을 검사하고 유소이건(乳小而乾 : 젖은 적고 말라 붙었으며) 복첩어배(腹捿於背 : 배는 등에 붙었다는 뜻)하니 진처자야(眞處子也 : 순진한 처자라는 뜻)라고 증언하였고 사림에서는 열부의 억울함을 누차 청하는 동안 6년 간이나 장례(葬禮)도 치루지 못하였다.
한편 노비 고만석이 상전의 결백을 증명코져 6년동안 서울에서 걸식하면서 쟁(錚)을 6차례나 울리고 천인(賤人) 신분으로 재상가의 문전에서 열부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도움이 되어 드디어 1825년에 조술은 처형되고 나라에서박열부의 정려(旌閭)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