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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로재 (霜露齋)
우리의 도선산의 재각(齋閣) 또는 재실(齋室)을 상로재(霜露齋)라한다. 이 상로재는 묘(墓)옆에 재사(祭祀)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우리는 겨울철에 차가우면서도 신선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선대 어느 분이 상로재란 이름을 명명(命名)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려우나 남곽공후인 18세조 사신(師莘)께서 영조24년인 1748년에 상로재를 창건(創建)하실 적에 종중 여러 중진에게 의견 조율하여 명칭을 정하였을거란 추측이며, 상로재란 액자의 글씨는 청하공 충수(淸河公 忠壽)께서 쓰셨다고 되어 있다.
6세조 평도공께서 시조 묘소(始祖 墓所)와 참의공 묘소(參議公 墓所)를 수호(守護)하기 위하여 고려의 풍속에 따라 묘옆에 석천암(石泉庵)이란 암자(庵子)를 지으시고 승려(僧侶)로 하여금 묘의 수호, 벌목금지와 제사를 맡아 지내게 하셨다.
이러한 세월이 흘러 약 250 년이 지나 13세손인 남곽공께서 나주목으로 부임하시어 묘소 성역과 아울러 전답을 장만하고 후손들도 번창하여지고 유교승종(儒敎崇宗)의 기틀이 잡혀감에 따라 시조 위토(位土)도 더욱 장만하여 정성스럽게 묘를 지키는 남곽공 후손과 또 제사에 참여하는 손이 점차 많아졌다. 그러나 지은지 200 여년이 지나 재각은 허무러지니 1959년에 철거하여 활당공후(活塘公后) 달호장군(達湖將軍) 승훈(勝熏) 도유사 재임시에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 석천암(石泉庵)
전남 나주시 반남면 석천리에 소재한 석천암은 선조 호장공 응주(應珠) 와 3세손 진사공 윤무(允茂) 두분 을 지키는 재궁 이다.
세종 때 평도공(朴訔)께서 호장공(응주 應珠)과 진사공(윤무 允茂)) 두분의 묘지 수호를 위해 창건하였는데 1739년(영조 15년) 10월 화재로 소실 되었다.
이때의 석천암 자리는 현 상로재 북편 언덕 위에 있었는데 1740년 중건 할 당시 현재의 석천리로 옮겨서 중건 하였고, 영조 38년 임오(壬午 1762년)에는 19세손인 도원(道源)이 본 도(本道)에 안찰사(按察使)로 왔을 때 배석(排石) 망주석(望柱石)을 다시 갈아치우고 분암(墳庵)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석천(石泉)이라 하였다. 1846년(헌종 12년) 2월과 , 1969년,1978년에 걸쳐 중수(重修)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반남면 자미산성
이 성은 영산강 유역에 펼쳐진 나주평야의 중심지에 위치한 표고 98.3m의 ‘자미'라 불리우는 야산 정상부를 에워싼 테뫼식 산성이다.
1999. 6. 7~2000. 8. 7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미산성은 널따란 들판의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영산강을 통해 쉽게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무등산, 금성산, 월출산, 나주 동부 산악지대와 영산강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성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형태로 자미산의 7부 능선을 통과하는 전형적인 테뫼식의 양식을 취하고 성벽의 축조방식은 우리나라에서 돌로 성을 쌓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편축법으로 쌓고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 땅속에 매몰된 상태로 토성처럼 보이지만 무너진 단면을 볼 때 바깥쪽에 가공흔적이 없는 거친 판석형의 돌을 이용하여 5단 정도 단을 두면서 쌓아 올렸으며, 내면은 산토와 잡석을 섞어 다진 흔적을 볼 수 있다.
산성에 딸린 부속시설로는 남. 북문지와 건물지 6개소 그리고 북문 밖의 샘터 1개소가 확인되었으며, 남문지는 현재 자미산성에 오르는 주통로로 이용되는 남서벽 회절부에 위치하며 너비 2미터 정도의 옹성을 갖춘 계단식의 성문으로 주변에 기와편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기와지붕으로 된 성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문지는 동북벽 회절부에 위치하며 남문지와는 달리 기와편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기와 지붕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보조성문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에는 항상 군인들이 상주하면서 군사적인 임무를 수행한 산성으로 판단되며 이는 여러 동의 기와지붕의 건물이라든가 축성 목적과 같은 사실들이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산성 내부에는 토기와 기와 등 많은 유물을 수습할 수 있었으며, 주로 통일신라 후기-고려 후기까지의 유물이 수습된 것을 참고하면 산성은 통일신라 후기에 쌓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나, 일부 기와의 문양이나 제작기법상 백제시기까지 소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곳을 중심으로 이웃해서 대안리 고분군(사적 제 76호), 덕산리 고분군(사적 제 77호), 신촌리 고분군(사적 제 78호) 등이 있어서 이 성이 이 지역의 중심세력이 거처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자미산성이란 이름은 성을 뜻하는 우리말 잣과 산을 뜻하는 우리말 메. 뫼. 미가 합쳐진 말로 성이 있는 산을 의미하며 이를 한자로 표기해서 생긴 말이다.

○ 반남 가는길
◈일반 대중교통 이용
1) 광주에서 출발 → 나주 경유(나주. 영산포 터미널) → 반남 또는 시종행 시외버스 이용 → 반남소재지 하차 (1일 5회운행 1:20분 소요)
2) 영산포 버스터미널 → 반남 구간 30분 간격 버스 운행 (하루 30여회) → → 반남소재지 하차
◈ 승용차이용시 도로안내
▶ 나주 영산포에서 들어오시는 길(약 20분)
- 영산포터미널 → 영암 신북쪽 3Km지점 반남고분군 이정표(국도13호선) 8Km 진입 → 덕산고분군 → 반남소재지
▶ 함평에서 들어오시는 길(약 20분)
- 함평사거리(고가도로 밑으로) → 나주 동강 → 나주 공산 → 나주 반남 → 대안리 고분군 → 반남면소재지
▶ 영암 신북에서 들어오시는 길(약 5분)
- 신북 육교 좌회전 신호 → 반남,시종면 방향 → 반남소재지
▶ 목포에서 들어오시는 길(약 30분)
- 함평사거리(고가도로 밑으로) → 이후 함평에서 들어오는 길과 동일


주변 관광지
[ 성향공원(姓鄕公園) ]
옛부터 나주는 성씨의 고향으로 알려져 왔다. 그 명성에 걸맞게 나주시는 1990년 10월 30일 전국 최초 성씨(姓氏)공원인 성향공원(姓鄕公園)을 꾸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데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전라남도 나주시 대호동 동신대학교 길 건너편, 함박산 일대에 나주가 본관인 성씨의 역사와 유래를 기록하는 비를 세우고 공원으로 조성하였는데, 반남박씨는 공원 맨윗쪽에 반남박씨시원비(潘南朴氏始原碑)를 세워 놓았다.
나주를 본으로 하는 성씨는 62개인데, 현재 성향공원에는 대표적인 11개의 성씨( 반남박朴, 나주나羅, 금성범范, 금성나羅, 남평문文, 나주이李, 나주김金, 나주정鄭, 나주최崔, 나주임林, 나주오吳 )가 비에 성씨의 유래를 새겨놓아 나주만의 특수공원으로 면모를 갖추어 놓았다.
성향공원이 들어선 함박산은 정감록에 등장하는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고, 국도 13호선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곁에 벨로드롬 경기장과 체육관이 있는 곳이다.
○찾아 가는길
▶ 광주역 하차 : 시내버스 160번
▶ 송정리역 하차 : 시내버스 160번, 555번
▶ 나주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160, 555번)편 이용하여 10~15분거리
▶ 광주공항에서 시내버스(160, 555번)편을 이용하여 10~15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