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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陜川) 재각(齋閣)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합천 재각(陜川 齋閣)은 야천선생께서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지 260년이 지난 1793년에 선생의 8대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조께서 안의현감(安義縣監)으로 재임하실 때 창건하시어 2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중건(重建)을 하였다.그러나 건물이 노후되어 우천 및 폭우 시 누수 등으로 건물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놓여 있어.이를 보고도 돌보자 아니함은 후손으로써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며 조상에 대한 도리가 아니어 구(舊) 헐고 터를 넓혀 보다 큰 전통양식의 목조건물로써 새로운 재각을 1994년 건축하였다.
반남박씨 대종중에서는 이 신도비 보호를 위한 비각(碑閣)의 신축과 재각의 중건 계획을 수립하여 종원의 성금 모금 계획을 세우고 1991년 1월 22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야천선생의 묘사일(墓祀日)인 1992년 11월 4일(음력 10월 10일)에 기공식을 거행하고 공사를 착수하였다. 그 후 전국의 수많은 종원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공사가 진행되었고 1993년 3월 16일 상량식(上樑式)을 가졌고 한국식전통 목조건물 양식으로 이익공양식 겹 처마,팔각지붕으로 17.64평 규모로 부지를 넓게 확보하여 1994년 9월 30일 공사가 완료되었다.
반남박씨 대종중에서는 이 신도비 보호를 위한 비각(碑閣)의 신축과 재각의 중건 계획을 수립하여 종원의 성금 모금 계획을 세우고 1991년 1월 22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야천선생의 묘사일(墓祀日)인 1992년 11월 4일(음력 10월 10일)에 기공식을 거행하고 공사를 착수하였다. 그 후 전국의 수많은 종원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공사가 진행되었고 1993년 3월 16일 상량식(上樑式)을 가졌고 한국식전통 목조건물 양식으로 이익공양식 겹 처마,팔각지붕으로 4.9평 규모로 종전보다 넓게하고져 하였으나 위 토지가 산림법상 보존임야로 지정되어있어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한 채 1994년 9월 30일 공사가 완료되었다.

[ 합천 화양리 야천 신도비(陜川 華陽里 冶川 神道碑)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에 위치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301 호로 지난 1994년 7월 4일 지정된 합천 화양리 야천 신도비(陜川 華陽里 冶川 神道碑)가 있다.
신도비는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신도비는 무덤의 동남쪽에 세우는데, 그것은 동남쪽을 ‘신령의 길’[神道]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신도비는 야천(冶川) 박소(朴紹, 1493~1534)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90년(선조 23)에 세웠다. 선생은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1519년(중종 14)에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정의 훈구파(勳舊派)로부터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외가인 합천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생이 죽은 뒤에 나라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영의정’(領議政)의 벼슬과 문강(文康)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신도비는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선생이 야천 선생을 숭모하여 지은 글에 조선의 명필(名筆) 석봉(石蜂)한호(韓濩)선생의 글씨로 새긴 귀중한 고적(古蹟)으로 1590년(선조 23) 9월에 수립(竪立)하여 그로부터 400 여 년의 풍설(風雪)로 각자(刻子)가 마모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다.이 역시 명문대가의 후손으로써 매우 민망스러운 일이다.신도비는 또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뛰어나 재각중건과 병행하여 비각(碑閣)을 세우고 이를 길이 보존하게 된 것이다.
반남박씨 대종중에서는 이 신도비 보호를 위한 비각(碑閣)의 신축과 재각의 중건 계획을 수립하여 종원의 성금 모금 계획을 세우고 1991년 1월 22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야천선생의 묘사일(墓祀日)인 1992년 11월 4일(음력 10월 10일)에 기공식을 거행하고 공사를 착수하였다. 그 후 전국의 수많은 종원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공사가 진행되었고 1993년 3월 16일 상량식(上樑式)을 가졌고 한국식전통 목조건물 양식으로 이익공양식 겹 처마,팔각지붕으로 4.9평 규모로 종전보다 넓게하고져 하였으나 위 토지가 산림법상 보존임야로 지정되어있어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한 채 1994년 9월 30일 공사가 완료되었고, 반남(潘南)박씨 문중에서 1994년에 비각을 세워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는 본래 경상남도 합천군 거을산면의 지역으로서 달윤산 남쪽이 되므로 화양동, 화동, 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내면의 나천동과 묵촌동 일부를 병합하여 화양리라하여 묘산면에 편입되었다. 화양리는 화양, 상나곡 하나곡등으로 3개의 자연마을단위로 되어있다.

■ 찾아가는 길
88고속도로 → 해인사 IC → 1084번 도로 → 26 국도 → 거창(합천)방면 → 검문소 → 야로면 덕암리 → 묘산면 화양리 (※ 묘산면사무소 가기전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