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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주지역 나들이 ]
만죽재고택
경북 영주군 문수면 수도리 물섬마을 중간 골짜기로 올라가는 길목 우측편 산록에 자리잡고 있는 만죽재고택은 민속자료 제93호로 지난 1990년 8월 7일 지정되었다.
배치구성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가 □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이다. 안채 평면구성은 대청 3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상방 1칸, 고방 반칸, 문간 반칸이 연달아 놓여있다. 문간은 안마당 쪽으로 벽체 없이 개방시키고 서쪽에 널문을 달아 옆 마당으로 통하게 했다. 대청 우측은 안방 칸반, 정지 칸반이 연이어 있고 정지 상부에는 안방에서 이용하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중문 좌측은 사랑채 부분으로 사랑방 2통칸, 마루방 1칸에 이어 마루방 뒤쪽에 못방 1칸을 두었다. 사랑채 전면은 얕은 기단에 통주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툇마루에 계자각 헌함을 돌렸다. 중문 좌측은 상부 다락을 설치한 마구 1칸이 있다. 기단은 강돌에 시멘트 모르타르로 상면을 마감하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안대청 전면과 사랑채 툇기둥만 두리기둥이고, 너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안대청 상부가구는 간결한 3량가이고 사랑채는 전퇴 5량가로 사랑채의 격식을 높였다. 지붕은 사랑채부분만 독립된 팔작지붕이고 나머지는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이 가옥은 반남 박씨 판관공파 종가로서 현 소유자의 11대조인 박수(1641~1699)선생이 이 마을에 입향하여 건립하였다.
수도리 박천립가옥 (水島里 朴天立 家屋)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있는 문화재자료제364호로 지정되어있는 이가옥은중간마을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까치구멍형 주택(住宅)이다. 정면(正面) 3간(間) 측면(側面(2간(間) 규모(規模)의 6간(間) 까치구멍집인데, 평면(平面)은 전열(前列)에 사랑방, 봉당, 정지를 두었고 후열(後列)에는 웃방, 마루, 안방을 두었다. 평면상(平面上)의 특징(特徵)은 일반적(一般的)으로 마구간이 있어야 할 위치(位置)에 사랑방이 설치된 것과, 사랑방의 전면(前面)과 측면(側面), 상방의 측면(側面)에 외부(外部)로 통(通)하는 문(門)을 설치(設置)하여 폐쇄적(閉鎖的)인 까치구멍집에 개방성(開放性)을 도입(導入)한 점인데, 이러한 형태(形態)는 6간(間) 까치구멍집의 초기변형(初期變形) 예(例)로서 겹집의 변형과정(變形過程)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資料)로 생각된다. 이 가옥은 반남박씨의 세거 가옥의 하나로서 소유자의 모(母)인 김망임씨의 중연에 의하면 1923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1975년경의 지붕 개량 사업으로 인해 외형이 약간 변모되었지만, 내부의 각종 시설의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수도리 박덕우 가옥(水島里 朴德雨 家屋)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화재자료 363호로 지정된 이 가옥은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6칸 까치구멍집인데 이 마을 까치구멍집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다. 평면 구성은 먼저 전열은 전면 가운데의 대문을 들어서면 흙바닥의 봉당이 나오고 봉당 우측에 정지 1칸, 좌측에 마구 1칸이 연결되어 있다. 마구는 근년에 좌측으로 1칸 달아내었고 기존 마구간은 봉당과 연계해 사용하고 있다. 후열은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사랑방 우측에 안방을 두었다. 이러한 평면 구성은 기본 6칸 까치구멍 집에서 필요공간은 생활편의에 따라 횡축으로 확장된 모습이다. 정지는 전면 벽체를 2척 가량 달아내고 그 자리에 찬장을 설치하였고 부뚜막 윙; ㅔ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반침이 설치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얕게 쌓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 상부가구는 간략한 3량가이고 지붕 양측에 외기도리를 두어 추녀와 서까래를 받쳤다. 지부어은 초가지붕을 1976년 지붕 개량사업때 일식 시멘트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조현(閔 祚顯)의 처 반남박씨 열부각
경북 영주시 문수면 만방1리에 있다. 열부 박씨는 반남이고 사건(師騫)의 딸인데 17세에 민조현에게 출가하였다가 신행전에 부군(夫君)과 사별(死別)하고 청상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있던 중 이웃의 김조술이란 자가 박열부를 범하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조술은 이에 반감(反感)을 가지고 박씨는 아이를 셋을 낳았고 또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서 허무맹랑한 말을 유포(流布)하여 열부의 체면을 손상하므로 열부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하여 관아에 가서 울며 호소하였으나 조술의 금력에 의하여 관의 처리는 부진하고 오히려 열부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환됨에 열부는 억울함을 참다 못하여 마지막 결심으로 다시 관에 가서 거듭 호소하다가 사태가 불리함에 칼을 빼어 자결하니 관비(官婢)가 열부의 시신을 검사하고 유소이건(乳小而乾: 젖은 적고 말라 붙었으며) 복첩어배(腹捿於背: 배는 등에 붙었다는 뜻)하니 진처자야(眞處子也: 순진한 처자라는 뜻)라고 증언하였고 사림에서는 열부의 억울함을 누차 청하는 동안 6년 간이나 장례(葬禮)도 치루지 못하였다.
한편 노비 고만석이 상전의 결백을 증명코져 6년동안 서울에서 걸식하면서 쟁(錚)을 6차례나 울리고 천인(賤人) 신분으로 재상가의 문전에서 열부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도움이 되어 드디어 1825년에 조술은 처형되고 나라에서박열부의 정려(旌閭)를 내렸다.
운강정(雲岡亭)
경북 영주시 문수면 조재리 간곡 중구산에 있으며 반남박씨 문중이 관리한다. 운강(雲岡) 박익용(朴翼龍)의 덕행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중재(重齋) 김황(金榥)의 기가 있다.
환학암(喚鶴菴)
경북 영주시 문수면 탄산리에 있으며 반남박씨 문중이 관리한다. 환학암(喚鶴菴) 박경안(朴景顔)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소고대(嘯皐臺)
경북 영주시 가흥1동 한정(寒亭) 마을에 있고 반남박씨 문중(門中)에서 관리하고 있다.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이 낙향하여 소요(逍遙)하던 곳인데 후손들이 공(公)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1972년에 대(臺)를 수축하고 대 위에 팔각(八角)의 정각(亭閣)을 건립하였다.
삼락당(三樂堂)
경북 영주시 가흥1동(문정동 하한정) 한정마을 경로당 좌측편에 위치하고 있다. 삼락당은 정면 4칸, 측면 칸반이고, 평면은 중앙 2칸, 마루방을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들일 중당협실형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이 건물은 조선 인조때 이광의 난에 큰 공헌을 세운 진사(進士) 박종무(朴從茂)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그 후손 삼락문중(三樂門中)들이 뜻을 모아 1938년 건립하였다. 삼락(三樂)은 최락(最樂) 지락(至樂) 역락(亦樂)이라 하였다.
육우당(六友堂)
경북 영주시 가흥2동 귀내(古峴)에 있다.도사(都事) 박회무(朴檜茂)가 하망2동 원당(元塘)에 건립하였던 것을 후손들이 현 위치에 이건하였다. 창석(蒼石) 이준(李埈) 죽유(竹) 오운(吾澐)의 시가 있다.
육우당은 조선 인조때 의사 박회무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출정했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하망동에 건립하여 여생을 보낸 곳으로, 당호인 육우당은 박회무가 정자뜰에 소나무, 전나무 매화나무, 대나무, 연꽃, 난을 심고 벗을 삼은 것에 연루한다. 평면 구성은 정면 4칸 중 중앙 마루방 2칸을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 1칸씩 꾸민 중당협실형이며 전면에는 툇마루를 깔고 계자각 난간을 세웠다.
하한정(夏寒亭)
경북 영주시 가흥1동 62번지 한정(寒亭)에 있는데 동지(同知) 박록(朴)이 건립하였다. 넓은 들을 바라보고 긴 강을 앞에 두어 상쾌하고 양명(陽明)하므로 더운 여름에도 항상 청량(淸凉)하여 하한(夏寒)이라 이름하였다. 자서시(自 詩) 외에 창석(蒼石) 이준(李埈) 중국인 학초(學初)의 시가 있다. 반남박씨 삼락당(三樂堂) 문중이 관리하고 있다.
박제정 정려문(朴齊政 旌閭門)
경북 예천군 유천면 매산리 에 소재하는 효자 정려문이다. 정려 현판의 크기는 가로 195㎝, 세로 18㎝이다.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박제정지문(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朴齊政之門)’, ‘성상랑조삼십년계사십이월십육일명정(聖上郞祚三十年癸巳十二月十六日命旌) ’,1893년(고종 30))이 각자되어 있다. 반남박씨 효자 박제정(朴齊政)을 위해 국가에서 세웠다.
존경재(尊敬齋)
경북 문경 산북면 내화리(탑동)에 있는 존경재(尊敬齋)는 1739년(英祖 己未)에 건립되었고, 1949년에 불에 탔다. 1955년에 중건되었다. 관리는 내화리 반남박씨 문중에서 하고있다.
연산조(燕山祖)때 한양으로부터 예천 화장(花庄)에 낙향하여 은거한 박인양(朴寅亮)을 추모하여 후손이 세운 제각이다. 박인양(朴寅亮 1457~1537)은 자(字)는 대천(代川)이요, 반남(潘南)박씨 10세손이며, 숙천부사(肅川府使)를 지낸 박임정(朴林禎)의 장자로 관(官)은 충좌위 상호군이다. 배(配)는 인동張씨이다.묘는 예천 화장 사동에 있다. 시거(始居) 예천 화장으로 지금의 문경군 산북면 내화리 이다. 아들은 세웅(世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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