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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노강서원 ]
경기도 기념물 제41호(1977.10.13)로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6-1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노강서원은 조선조 숙종때의 문신 문열공 박태보를 모신 사당이다
정재공 박태보(朴泰輔)는 1654(효종 5)∼1689(숙종 15).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반남박씨 16세손으로, 자는 사원(士元)이고 호는 정재(定齋)이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세당(世堂1629-1702)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현령(縣令) 남일성(南一星)의 딸이다. 당숙인 세후(世?1627-1650)에게 입양되었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생원으로서 1677년 알성문과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었을 때 시관(試官)으로 출제를 잘못하였다는 남인들의 탄핵을 받아 선천(宣川)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1680년 부수찬·수찬·부교리·지평(持平)·정언(正言)을 거쳐 교리가 되었는데, 이때 문묘 승출(陞黜)에 관한 문제와 당시 이조판서 이단하(李端夏)를 질책한 상소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그뒤 서인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그의 환수를 청함에 1682년 홍문관의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 사가독서를 마치고 나서 이천현감(伊川縣監)으로 나간 것을 시작으로 부수찬·교리·이조좌랑, 호남의 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호남에 암행어사로 다녀온 뒤에 중앙에 보고한 과감한 비리 지적에 조정의 대신들이 감탄하였으며, 호남지역의 주민들로부터도 진정한 어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당시 서인 중에서 송시열(宋時烈)과 윤선거(尹宣擧)가 서로 정적으로 있을 때, 윤선거의 외손자임에도 불구하고 친족 관계라는 사심을 떠나 공정하게 의리에 기준을 두고 그 옳고 그름을 가려 통쾌하게 논조를 전개하여나갔던 바도 있다.이어 응교를 거쳐 파주목사로 나갔을 때, 조정에서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위패를 문묘에서 빼어버렸는데, 그가 부임하여 재직하는 파주 에서는 조정의 정책에 따르지 않고 그대로 이를 존속시켜나갔다 하여 인책, 면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하는 소를 올리는 데 주동적인 구실을 하였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 도중 옥독(獄毒)으로 노량진에서 죽으니 그때 나이 36세였다.
재주가 뛰어나서 젊은 나이에 장원급제를 한 경력이 있으며, 학문적인 태도도 깊고 높아 당대의 명망 있는 선비들과도 깊은 교유관계를 가졌다.그가 죽은 뒤 왕은 곧 후회하였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정려문이 세워졌고, 풍계사(豊溪祠)에 제향되었다.
박태보는 학문과 문장에 능통하고 글씨도 뛰어나게 잘 썼다.그가 죽은 뒤에 영 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노강서원은 원래 노량진에 있었고, 1695년에 건립되었다.
1925년 큰 홍수로 한강물이 넘쳐 흐르는 바람에 노강서원이 물에 떠내려 갔다. 1969년에 그의 후손들에 의하여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에 새로 노강서원을 건립하고 1977년에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 찾아가는길 ]
1.지하철 7호선 종점이 장암인 열차를 타고 장암역에서 내린 후 큰길이 있습니다.
그 곳으로 나오시면 횡단보도가 있는데.횡단보도를 건너시면...[문화제 안내 표지판이 있습니다]
일방통행 길이 있습니다.그곳으로 들어가시다 보면, 노강서원이 나옵니다.

2. 4호선 노원역, 7호선 마들,수락산역에서 하차 후,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탑니다.
            노원역 : 면허시험장(의정부방면)
            마들역 : 주공11단지(의정부방면)
            수락산역 : 수락산역(의정부방면)
     버스 번호 : 72-1, 12-3, 12-5, 20-3
     내리실 곳 : 장암 차량기지(장암역)
     내리시면 위와 같이 가시면 됩니다